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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rorebs 2024. 2. 4. 17:02


한글 하나이자 크로 바른 글 . 바로 한글의 의미이자 힘든 일제 강점기하에서 한글 연구와 그 우수성을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 주시경선생님께서 손수 이름 지으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이다. 중국문화와 유학의 영향으로 한문만을 숭상하고 과거급제를 위해서는 한자로 된 중국 고전만을 암송하고 공부해야만 했던 조선시대. 한글은 언문이라 칭해지며 우리 민족 스스로가 중국의 한자보다 저급한 상대적으로 천한 문자로 칭하며 신분이 낮은 계층이나 여성들만이 쓰는 문자로 천시되었었다. 하지만 주시경선생님은 이에 대한 의심과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전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한글 연구에 39년 짧았던 전 인생을 걸었다. 그 전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이었기에 그 길은 아주 힘들고 고단했지만 주시경선생님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열정적으로 매달려 한글의 규칙, 품사, 문법, 음운, 사전까지 모든 분야의 한글연구의 기초와 체계를 만드셨다. 을사늑약으로 인한 일제강점기하에서도 한글에 대한 연구는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독립신문 발간에 주요 인물로 참여하고 우리 민족에게 한글 교육을 통한 독립정신 고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다 결국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최근 한글날이 공휴일에서도 제외되는 등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우리는 주시경선생님의 한글을 위한 전 생을 건 노력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우리말의 우수성, 우리말의 아름다움, 우리말의 과학성을 자랑스럽게 전세계를 상대로 얘기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화 작가들과 만화가들이 참여한 창작 위인 동화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옆자리 짝꿍처럼 친근한 위인들의 면면을 알려 준답니다.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서당 훈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한문 공부에 열심이었던 주시경은 열다섯 살에 훈민정음을 처음 배우면서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우리글의 명쾌함에 푹 빠졌답니다.

그때부터 훈민정음 연구를 시작한 주시경은 배재 학당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우며 폭넓은 지식을 쌓았지요. 동시에 우리말과 우리글을 연구한 결과를 문법 책으로 써 나갔습니다.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래 수백 년간 돌보지 않았던 우리글을 우리말과 실생활에 맞게 바로잡는 작업이었습니다. 1896년부터는 서재필의 요청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 독립신문 을 펴내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이후 배재 학당을 졸업한 주시경은 서울 시내 학교를 돌며 국어 강습에 나섰고, 정부에서 세운 국문 연구소에 들어가 우리글 맞춤법을 연구하며 국어에 관한 책을 계속 쓰는 등 우리말과 글을 널리 퍼뜨리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자 주시경은 더욱더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는 일에 힘썼습니다. 주시경은 훈민정음에 ‘하나이자 크고 바른 글’이라는 뜻으로 ‘한글’이란 순우리말 이름을 지었고, 최초의 국어사전인 말모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14년 갑작스러운 병으로 앓아누운 주시경은 눈을 감았다. 오늘날 주시경은 한글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서 널리 존경받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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