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종교란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미미한 것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종교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임병이다. 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했던 나는 부대 밖으로의 외출이 잦았다. 반면에 군수과의 서기 겸 잡다한 일을 처리하던 그 후임병은 본부중대 소속이 아닌 일반 전투중대에서 차출된 사병으로서 늘 군수과 사무실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임병은 챠트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차출된 것이기에 그에게 맡겨진 업무는 언제나 넘쳐났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그의 업무를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붙박이로 사무실을 지켜야만 했다. 올림픽 준비로 한창이던 1987년의 여름, 공병부대였던 우리 부대의 부대원 대부분은 국군의 날 행사 시설을 짓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