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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와 디테일 때문이에요.

특히 위스키나 재즈 같은 요소들은 그의 소설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이나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잖아요.

그래서 이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책은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서도 특히 개인적인 취향과 전문적인 지식이
잘 어우러진 특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마치 하루키와 함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증류소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사실 위스키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끔 그 여정 자체가 참 흥미롭습니다.

위스키의 고향을 찾아서 🥃

많은 분들이 위스키의 진정한 맛은 그 생산지에서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죠. 하루키 역시 이런 생각에
공감하며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
아일레이(Islay)와 아일랜드의 증류소들을
찾아갑니다.

저는 특히 아일레이 섬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어요. 피트 향 가득한 위스키의 독특한
풍미가 그 섬의 자연 환경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아주 생생하게 알려주거든요.

섬의 흙냄새, 바닷바람, 그리고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과 전통이 한데 섞여 하나의
맛을 빚어낸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하루키는 단순히 위스키의 종류나 역사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증류소 사람들과의 만남, 그들이 위스키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 지역의 분위기까지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그 장소의 공기와
시간이 느껴진다는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시간이 만들어낸 맛의 미학

위스키는 오크통 속에서 긴 시간을 견뎌내며
완성되는 술이잖아요. 하루키는 이 숙성의 과정을
우리의 삶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제 시간을 채우는
위스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삶의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문장들은 참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위스키 한 모금을 음미하듯 천천히 곱씹게
만듭니다.

특히 아일레이 섬의 증류소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갖는 자부심과 우주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표현은 참 멋졌어요.

그들에게 위스키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자 예술 작품인 것이죠.
이런 태도가 바로 명품 위스키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아닐까요?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순간들 ✨

책을 읽다 보면 당장이라도 좋은 싱글 몰트 위스키
한 잔을 따라 마시고 싶어져요. 특히 얼음을 넣지
않고 위스키 본연의 향을 즐겨야 한다는 하루키의
조언을 실천하고 싶어집니다.

하루키는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고
여행자들을 맞이한다고 표현했어요. 이 말은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그 장소가 가진 고유의 매력과 힘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아일레이에 가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갯내음이 섞인다는 싱글 몰트를
생굴에 곁들여 맛보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어요.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위스키를 매개로 하여
작가의 사색, 인생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엿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책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시라면 당연히
좋아하실 거고요, 위스키에 관심이 없더라도 훌륭한 여행
에세이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책을 덮고 나니, 오늘 저녁은 왠지 모르게 비 오는
날의 창문처럼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위스키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