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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인간만 골라 뭘 할까? 그것도 풀이? 흔히들 SF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그래서 동화보다는 청소년이나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다루어지게 마련인데 이 책 만큼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뻔한 소재가 되어버린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에는 수학 공식처럼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패턴과 주인공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우선 지구를 위험에 빠트리는 악당과 이에 맞서는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으로 이어지는 영웅 캐릭터는 뭔가 비범함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예외적으로 평범한 인물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알고 보면 능력자거나 특별함을 감춘 위장술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첨단 무기를 공급해주는 박사가 등장해 감초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책 ‘인간만 골라골라 풀’은 설정을 살짝 비틀어서 그 같은 공식을 어린이 눈높이로 풍자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영희 작가는 지구를 지키는 ‘맨’의 계보에 턱 하니, 사람이 아닌 미친 염소 ‘염맨’을 끼워 넣었다. 게다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와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박사라는 존재를 추적해 보면 문방구 할머니다. 주인공 풍이가 선택된 이유도 사나흘에 한 번꼴로 문방구를 드나들며 쿠폰에 야무지게 도장을 받아가기 때문이다. 포켓몬스터 카드 중 ‘라이츄 브레이크’ 카드를 뽑는 게 인생의 목표인 평범한 꼬맹이. 열 살밖에 안 된 이 꼬맹이가 지구를 지키는 임무를 떠안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순전히 문방구 할머니랑 엮였기 때문이다. 빛과 물이 넉넉한 행성을 찾아 우주를 떠돌아다니다가 적당한 행성을 발견하면 터를 잡고 농사를 짓는다는 외계인 아그리꼴라도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외계인 악당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이들의 생김새나 지구에 온 목적을 보면 먼 옛날 우주로부터 날아와 지구에 생명체를 퍼트렸다는 외계 생명체 유입설을 떠올리게 한다. 한 행성의 생명은 이미 생명체가 존재하는 또 다른 행성으로부터 전파된 것이라는 것이 가설의 핵심인데 아그리꼴라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지구에서 신나게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목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만 골라서 습격하는 풀을 퍼트리기로 한다. 이들의 계획을 돕던 연구원이 바로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문방구 할머니라는 설정도 기발하다. 젊은 날 식물학 박사였던 문방구 할머니는 외계 생명체 아그리꼴라들에게 고용된 연구원이었다. 다이아몬드를 대가로 받는 대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외계인의 요구대로 일한 결과는 식인식물의 탄생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익숙한 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순전히 이익추구만을 위해 해로운 물질을 생산하고 판매한 결과 부메랑처럼 많은 사람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 말이다. 식인식물이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슬며시 뿌리를 내리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면서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과정은 환경파괴로 인해 지구생명체가 위협받는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외계인들 측면에서 보면 고작 탄소화합물에 불과한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무모함을 이토록 통렬하게 꼬집을 수 있을까 싶다. 다행히 문방구 할머니인 김도경 박사가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인간을 구하고자 비장의 무기를 풍이에게 남긴다. 이 어마 무시한 임무가 담긴 메시지와 무기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작가는 허를 찌르는 유머와 위트로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세상이 홀딱 망할 징조가 나타나거든 목에 걸고 싸우라고 준 것이 바로 유치원생 여자아이들이나 걸고 다닐 법한 분홍색 왕 구슬 목걸이니 말이다. 정작 주인공 풍이가 가장 무서워하고 믿음직스러워하는 무기는 엄마의 뒤집개다. 뒤집개를 든 채 결연한 표정으로 책표지에 등장한 주인공 모습과 내용상 위기 상황을 뒤집는 주인공 역할을 보면 이 설정 또한 복선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느닷없는 임무에 주인공 풍이는 아이답게 지구를 지키는 것은 당연히 어른들의 몫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어른들이란, 실은 일을 저지르기만 했지 해결은커녕 확대 재생산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예외 없이 상황은 악화되고, 검은 풀 소행으로 보이는 실종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더니 급기야 풍이 엄마마저 실종되고 만다. 주인공 풍이는 ‘지구를 지키는 것은 침략자의 비밀을 알아차린 사람의 몫’이라고 한 문방구 할머니 말을 뒤늦게 떠올린다. 마침내 유치해 보이는 분홍색 목걸이가 동물들과 말할 수 있는 장치라는 것도 알아낸다. 정부는 검은 풀의 습격에 갖은 방법을 써보고 가축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것도 통하지 않게 되자 초강력 농약과 폭탄투하라는 극단적인 대응책을 발표한다. 그러한 위기를 앞둔 시점에서 풍이는 말이 통하게 된 미친 염소 염맨의 도움으로 국면 전환을 이룬다. 사실상 인간 최악의 위기를 다룬 이 책은 인간의 위기를 지구의 위기로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엄밀하게 보면 위기를 초래한 것은 인간이다. 심지어 ‘인간만 골라골라 풀’은 먼저 공격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인간이 무심코 저지른 잘못에 무서운 재앙으로 다가오는 환경의 역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녹조로 가득 찬 4대강 등 현실에서 우리는 이미 비슷한 현상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인간에게 재앙으로 닥친 검은 풀을 없애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미친 염소 ‘염맨’이라는 사실 또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염맨은 가축 흑염소다. 미친 염소라는 별칭처럼 인간에게 길들지 않고 툭하면 우리를 뛰쳐나와 아이들을 공격한다. 그러다 동물과 말이 통하게 된 풍이의 도움으로 죽을뻔한 위기를 넘기자 위험에 빠진 풍이를 구하게 된 것을 계기로 검은 풀을 없애는 데 앞장선다. 여기에서 작가는 단지 말이 통하는 것과 소통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풍이는 평소 두룽마을 어린이로 살아가는데 고달 품을 안겨준다고 여겼던 염맨과 도아리 누나와 소통하게 되면서 검은 풀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약점도 찾아낸다. ‘인간만 골라골라 풀’의 천적이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일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풍이는 외계인들이 밝힌 식인식물을 만들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고 지구를 떠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전제한 ‘인간은 지구 상에서 가장 사악한 포식자라는 것과 지구의 다른 동물들은 인간을 경멸하고 두려워한다’는 관계설정이 오류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인간들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봉준호 감독의 ‘옥자’라는 영화를 보면 소위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생명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어 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 인디언들은 사냥할 때 희생당한 동물들을 상대로 형제라는 호칭을 써서 애도하고 고기와 가죽을 내어준 것에 감사함을 표시하며 절대로 필요 이상의 생명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그리꼴라들은 오히려 인간도 결국은 자연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우리의 생존이 결코 다른 생명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준 셈이다. 아그리꼴라들이 지극히 평범한 어린아이 풍이에게 설득된다는 설정은 작가가 그들이 전제한 사실을 오류로 만들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생각한다. 최영희 작가는 포켓몬 카드 같은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평범한 아이와 뭔가 비밀스러웠지만 따뜻한 감수성을 지닌 사춘기 소녀, 문방구 할머니, 미친 염소, 구슬 목걸이 등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법한 인물들과 물건에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춘 채 지구를 지키는 것은 어른도, 영웅도 아닌 바로 너희들 손에 달려 있다고 설득력 있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에게는 ‘인류의 위기가 정말 지구의 위기일까?’ 라며 되묻는 것 같다. 기발하고 황당한 설정에 깔깔거리고 읽다 보면 눈 깜박할 사이 시간이 지나는데 서늘한 여운이 꽤 오래 남는다.
외계인 아그리꼴라의 침공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아이들의 모험투명한 공 모양으로 생겼지만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인 아그리꼴라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간을 꼽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의 연구 끝에 인간을 잡아먹는 검은 풀을 개발하고, 그 풀을 전 지구에 뿌리게 됩니다. 번식력과 생명력이 막강한 이 식물은 며칠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건드리는 인간들에게 촉수를 뻗어 순식간에 잡아먹습니다. 지구 역사상 최악의 사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할 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이 이야기에서는 ‘침략자의 비밀을 아는 자가 지구를 구할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침략자의 비밀이 평범하고 소심한 소년 풍이에게 들어갑니다.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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